에르나와 빅터

에르나와 빅터 하셀블라드를 한 번이라도 만나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두 사람이 얼마나 서로에게 꼭 맞는 한 쌍인지 깊은 인상을 받곤 했습니다.

에르나는 빅터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처음부터 줄곧 그의 곁을 지켰습니다. 예테보리에서 함께 ‘빅터 포토(Victor Foto)’ 상점을 열었을 때부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Hasselblad의 시초인 첫 공방을 열었을 때까지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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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nnart Nilsson/TT Nyhetsbyrå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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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나와 빅터의 첫 만남

1914년 7월 27일에 태어난 에르나 나트호르스트(빅터 하셀블라드와 결혼하기 전의 이름)는 스웨덴 팔룬에서 자랐고, 이후 가족과 함께 스톡홀름으로 이주했습니다. 19살에 에르나와 빅터가 만난 건 어쩌면 운명이었습니다.

사연에 따르면, 빅터가 처음 마음을 빼앗겼던 사람은 에르나의 언니 비르기트였습니다. 예테보리에 살고 있는 빅터를 만나러 가기 위해, 비르기트는 스톡홀름에서 예테보리로 가는 주말 기차표를 샀습니다. 여행 바로 직전에 갑자기 병이 난 비르기트는 침대에서 일어나질 못했고, 표를 버리는 대신 에르나가 예테보리로 내려가기로 했습니다.

그때가 바로 1933년 크리스마스 연휴 무렵이었습니다. 그리고 1934년 6월 19일, 에르나와 빅터는 스톡홀름의 세글로라 교회에서 결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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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감각이 뛰어난 에르나

1937년 빅터는 에르나와 함께 자신의 사진관 겸 현상소인 ‘빅터 포토’를 열었습니다. 사업을 돕기 위해, 에르나는 모든 부기 업무를 맡아 처리했습니다. 그녀는 빅터가 자신만의 카메라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이루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 현실적이면서도 비즈니스 감각이 뛰어난 동반자였습니다.

빅터가 HK-7 항공 카메라 생산을 시작하기 위해 공방을 열었을 때, 에르나도 항상 그곳에 머무르면서 부품을 다루는 기술자들만큼이나 공정 속 다양한 톱니와 기계 장치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회사가 성장해가면서, 그녀는 Hasselblad의 대표로서든 호스트로서든 모든 일에서 빅터의 곁을 지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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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nnart Nilsson/TT Nyhetsbyrån

에르나와 빅터의 기억은 계속된다

1978년 8월 5일에 빅터 하셀블라드가 세상을 떠난 뒤 5년이 지난 1983년 7월 8일, 에르나 역시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사람의 기억은 스웨덴 예테보리의 에르나 & 빅터 하셀블라드 재단을 통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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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속 HASSELBLAD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스웨덴 카메라 제조사 간 협력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Hasselblad가 어떻게 달에 올라간 최초의 카메라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